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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갤러리아장 명화 한스 홀바인

정미루 2024. 11. 12. 01:03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 1497년 ~ 1543년)
독일의 화가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초상화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와 심리적 깊이를 잘 표현하여, 16세기 북유럽 미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스 홀바인의 생애
- 출생과 배경: 홀바인은 1497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화가로 이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 유럽 여행: 홀바인은 젊은 시절 여러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다양한 예술적 영향을 받았고, 특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주요 작품
- 초상화: 홀바인은 헨리 8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하였으며, 왕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 대표작: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대사들(The Ambassadors)"로, 이 작품은 두 명의 대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상징적 요소가 포함되어 당시 정치적 상황과 인물의 지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술적 특징
- 사실주의: 홀바인의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세밀한 디테일로 유명합니다.
그는 인물의 표정과 의상, 배경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성격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 심리적 깊이: 그의 초상화는 단순한 외형적 묘사를 넘어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그가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역사적 맥락
- 종교 개혁과의 관계: 홀바인은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으며, 그로 인해 그의 작품 스타일과 주제도 변화했습니다.
그는 바젤에서 활동하다가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런던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1515년 당시 유럽의 문화적 중심지였던 바젤에 가서 그곳에서 화가의 지위를 확립하였으며
이곳에서 1526년까지 머문 후에 약 2년간을 
런던에 체재하였다가 다시 바젤로 돌아 오게됩니다(1526∼1528)

제1차 런던 체재중에 이미 초상화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고 있던 그는 재차 런던 행차를 결의, 일단 고향인 아우크스부르크에 갔다가 1532년에 런던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안주하여 1543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 동안의 1536년에는 헨리 8세의 궁정화가에 임명된 적도 있었습니다

홀바인은 유럽에 있어서 고금을 통하여 최대의 초상화가의 한 사람으로, 뒤러와 크라나흐가 대표하는 독일 르네상스의 빛나는 초상화 예술의 전통을 그 정점에까지 끌어 올린 공적은 매우 크다.

모델에 대한 냉정하고 예리한 관찰과 정확하고 극명을 다한 세부 묘사, 명쾌한 화면 구성, 나아가서 작품을 단순한 초상화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성격에 대한 투철한 이해력 등을 그의 특색으로 하는 홀바인의 예술은,
가령 <로트르담의에라스무스>(1523년, 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와 <게오르크 초상>(1532년, 베를린 다름미술관)에 그 진가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한스 홀바인은 16세기 북유럽 미술의 거장으로, 그의 초상화는 사실주의와 심리적 깊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홀바인의 예술적 유산은 여전히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스 홀바인의 오들리 부인 그림, c.1538년 작품
19.5cm×27.5cm
그림의 신원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영국 궁정에는 오들리라는 두 가족이 있었습니다. 상공회의소 재무관 브라이언 투케의 딸인 엘리자베스 오들리라고 합니다. 그녀는 9대 오들리 경 조지 투셰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만들어졌을 때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1557년까지 작위를 승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들리 부인'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다른 엘리자베스 였습니다.
이 엘리자베스는 도싯 2세 후작의 딸이었습니다
(우연히 헨리 그레이의 여동생이었고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이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엘리자베스는 1538년 월든의 오들리 경 토마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림에 새겨진 명문은 제작된 지 몇 년 후에 추가되었지만, '오들리 부인'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조지 투셰와 결혼한 엘리자베스가 아닌 토마스의 아내 오들리 경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토마스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오들리 경은 토마스와 메리, 마가렛 사이에 두 딸을 낳았습니다.
메리는 결혼하지 않고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1546년), 마가렛은 노퍽의 제4대 공작 헨리 더들리와 처음 결혼했습니다.
토마스, 오들리 경은 1544년에 사망했고 엘리자베스는 1549년에 조지 노턴 경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1564년에 사망했습니다.

엘리자베스, 레이디 오들리의 초상화.
레이디 오들리는 반신상으로 오른쪽 3/4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검은색과 분필로 검은색 잉크와 수채화로 그려져 있고 머리 장식과 옷은 간략하게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홀바인은 그녀가 착용한 보석을 주의 깊게 연구했고 브로치에 있는 보석의 색상을 표시했습니다.
시트 오른쪽 상단의 간단한 분필 스케치는 고전적인 건축적 세부 사항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홀바인의 필체로 색상과 직물 메모가 새겨져 있습니다.
드레스에는  samet (벨벳)과  rot damast (빨간색 다마스크)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녀의 브로치 보석에는  rot  (빨간색),  w ( 바이스 또는 흰색),  Gl (금색)이라고 주석이 달려 있고 하트 모양의 잎이 있어 녹색을 나타냅니다.

엘리자베스, 레이디 오들리(1564년 사망)
레이디 엘리자베스 그레이는 1510년에 제2대
도르셋 후작(1477년 6월 22일-1530년 10월
10일)과 마가렛 워튼(1487년-1541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538년 4월 22일, 그녀는 월든의 남작 오들리
토마스와 결혼했습니다
(1488년에서 1544년 4월30일).
그들은 두 딸인 Margaret (1539-1564년 1월 10일)과 Mary를 두었습니다


한스 홀베인의 작품 전시 목록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1549년 조지 노턴 경과 결혼하여
딸보다 먼저 사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토마스의 네빌 윌리엄스의 전기를 포함한 다른 출처는 딸의 죽음에 따라 손자 손녀들을 돌봤다고 밝혔지기도 했습니다.


천안 갤러리아장에 전시된  한스 홀바인의 작품을 감상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약
갤러리아장
충남 천안시 서북구 쌍용8길 6
https://naver.me/xJaBjSrC

갤러리아장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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